2009년 1월 23일 금요일

지하철 #2

아래의 지하철 #1에서 이어지는 글

SKT 프로젝트는 6개월 내내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을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했기에 나만의 시간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할수 있는 최적의 공간은 지하철이었다. 여름엔 시원했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남들 시선만 신경쓰지 않으면 나름 매일 출근 1시간 퇴근 1시간의 왕복 2시간이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오롯이 배정되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마인드가 바뀌어야 했다. 그 전에는 아무 생각없이 선반위에 올려진 신문을 끄집어 내려 읽고 시간이 남으면 SODOKU를 푸는 것으로 보냈던 곳이 창작과 생산의 공간으로 바뀌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 그 전에는 무작정 무가지 신문을 가지고 탔던 지하철에 아무것도 없이 단지 새하얀 A4 용지 하나와 모나미 볼펜 하나만 가지고 타기 시작했다. 2호선 합정역에서 타서 그 다음역인 당산역을 지나는 동안 푸르른 한강을 보면서 시작된 지하철의 여정은 낙성대에서 끝났고, 이때까지 할 일은 단 한가지였다. 새 하얗다 못해 미끄러져 내리는 A4용지 종이 한장을 나만의 아이디어로 채우는 일.

지금 Enswer.me가 있는 이유는 어찌보면 지하철 때문이다. 나는 지하철에 앉아서 한장의 A4용지를 생각의 흐름대로 끄적거렸다. 때론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중학교때 영어 숙제로 깜지를 쓰듯이 머리속 생각을 글자로 쌔까맣게 채우기도 했다. 아이디어가 잘 안떠오를때는 그냥 서서 왼쪽 문에서 오른쪽 문까지 걸어다녀도 됬고, 신도림에서 타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패션을 보면서 다양성을 느끼기도 했다. 퇴근하면서 당산철교 위를 지나갈때는 한강과 그 검은 물결에 반사되는 여의도 국회 의사당의 하얀 조명을 보면서 의지를 다잡곤 했다.

어짜피 나는 좋은 차를 타는 것보다 지하철이 오히려 좋았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뭐라고 생각하든 내 생각대로 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를 타면 할 수 있는 것은 듣는 것 뿐이지만 지하철에서는 눈으로 읽고 또 글을 쓸 수도 있다. 결국 주머니 속에 구겨넣을 수 있는 아주 작은 A4용지는 지하철에서는 내 생각을 무한대로 확장해주는 너무나 큰 운동장이었다. 나는 그 운동장을 생각할 수 있는 만큼 마음껏 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남들은 모두 그게 가능할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의문을 던졌던 지금의 동영상 검색이 시작되었다.  검색은 돈이 된다. 그런데 텍스트 검색 시장은 포화상태이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동영상 검색이다. 동영상 검색은 무엇이 문제인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과연 그 문제들은 진정 해결 가능한가. 동영상 검색의 아이디어는 실현 가능한가. 동영상 1개 인코딩에 몇십분이 걸리는데 하루 수십만개의 동영상 처리가 정말 가능한가. 텍스트 수집 로봇과 동영상 수집 로봇의 차이는 무엇인가. 동영상 검색의 시장규모가 얼마나 되는가. 해외 진출에 문제는 없는가. 경쟁사는 어디가 있고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못한다면 우리는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이 우리에 합류해야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등의 수많은 질문들이 지하철에서 A4용지에 쓰여졌다. 그 질문들에 대한 답도 역시 지하철에서 쓰여졌다. 답이 없으면 책에서 찾아야 했고, 그 책을 읽는 시간과 공간도 결국은 지하철이였다.

지하철은 나에게 아직도 특별한 공간이다. Enswer.me를 창업한지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나의 하루는 지하철에서 시작되고 지하철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세계최고의 동영상 검색"과 "투명한 동영상 유통 플랫폼"의 단 두가지 비전이 확실해진 지금은 2년 전처럼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의 모든것이 지하철에서 나온다. "우리는 잘 하고 있나",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와 같은 단기적인 질문부터 "이번 달 우리의 방향은 무엇인가", "내년 이맘때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가"와 같은 장기적인 질문까지. "좋은 사람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까"와 같은 조금은 근본적인 물음과 답도 지하철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지하철은 내게 있어 생각을 정리하는 사색의 공간이다. 꼭 지리산 자락의 암자에 가부좌를 틀어야만 생각할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지하철이 나만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지하철은 독서의 공간이다. 하루에 2시간의 시간동안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전혀 자유와 선택이 없는 공간은 지하철 뿐이다. 실제 사람들은 자유를 생각하지만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 어찌보면 감옥과도 같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최고의 독서 공간이다. 지루함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결국 독서이니까.

나는 오늘도 지하철을 타는 것이 기다려 진다. 합정역에서 탈때 자리 없나 두리번 거리고 누구 앞에 서야 제일 빨리 앉을까 잔머리 굴리면서부터 여정은 시작된다. 목적지인 역삼역에서 내릴때는 문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을 헤치며 나아가야 하고 이때 나는 서울에 살고 할 일이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조금은 쳐졌던 턱을 한번 끄집어 당기고 위로 살짝 올리면서 힘을 내게 된다. 세상은 정말 살만한 곳이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지하철에서 시작되었고, 오늘도 보람찬 하루가 지하철에서 마무리 된다.



댓글 2개:

  1. trackback from: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엔써즈 일동 :-)
    엔써미(Enswer.Me)를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날 연휴 보내고 돌아오면 이제 정말 본격적인 2009년의 출발이 되는거겠죠? 2009년 한 해 여러분이 소원하시는 모든 일 이루어지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엔써미(Enswer.Me)의 소원은.. 가는 곳곳마다 엔써미(Enswer.Me)를 만나게 되는 것 .. 여러분과 더 많이 만나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9년 설날 연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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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rackback from: 엔써미의 생각
    엔써즈 김길연 대표가 이야기하는 엔써미는 지하철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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